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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블껌 이규대 가수 나이 조연구 프로필 노래 딸 이지람

by 4567n 2024. 11. 4.

바블껌 이규대 "응답하라 7080 코러스 콘서트, 그 시절 추억했으면"
-2018. 11. 21.

바블껌 이규대가 '7080 응답하라 코러스' 콘서트 무대에 오르는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규대는 24일 서울 종로 낭만극장에서 열리는 '응답하라 7080 코러스' 콘서트 무대에 선다.


이규대는 1972년 혼성듀엣 바블껌으로 활동하며 '토요일 밤에' '연가' '짝사랑' 등을 만든 가수 겸 작사 작곡가다. 특히 그는 고려대학교 응원가 '석탑'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답니다.

그는 '대중음악의 산실'과도 같은 낙원동의 공연장에 서게 된 이유에 대해 "요즘 대중문화 속에서 차츰 사라지고 있는 7080세대들의 노래와 향수를 전하기 위해 당시 콘텐츠로 각광받았던 음악다방 코러스를 재현, 공연으로 만들었다"며 "당시의 청년 문화를 만들었던 7080세대들과 기쁨을 나누고 추억하기 위해 무대를 준비했다"고 전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노래교실, 노래방이 아닌 지난 시절의 음악다방 코러스를 재현해 함께 노래하고 참여하는 이색 무대를 펼친다. 당시 입담으로 큰 웃음을 줬던 이규대가 100분 여 동안 진행과 노래로 즐거움과 감동을 전할 예정이랍니다.

여기에 '할배돌' 지오아재, 혼성트리오 소리셋, '소주한잔'을 부른 한기욱이 응원부대로 출연한답니다.

'사천가' 이어 뮤지컬 '서편제' 준비 중인 이자람
2010. 6. 28

창작 판소리 '사천가'로 올봄 폴란드 콘탁 페스티발에서 최고 여배우상을 탄 이자람이 7월3일부터 11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사천가 2010' 공연을 한다. 그는 8월14일부터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무대에 오르게 될 뮤지컬 '서편제'의 송화 역과 국악감독까지 맡았다. 동시에 두 공연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는 '노래하는 이자람'을 만나 음악에 대한 생각을 들었습니다.

사천가로 폴란드서 최고 여배우상

공연을 앞두고 있는 '사천가'에서부터 궁금한 게 많았다. 폴란드 관계자들은 국제연극제를 열었는데 왜 아시아에선 유일하게 '사천가'만을 초청했을까. '사천가'가 국악을 하는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궁금하답니다

이자람은 사천가 창작의 계기부터 소개했다.


"스물여덟 살에 문득 회의가 들었다. 나는 분명 착하게 산다고 살아왔는데 왜 모든 게 어렵게 느껴지고 세상사는 게 행복하지만 않은 걸까. 착하게 살면 행복하고 만사가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어떤 때는 오히려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어렵고, 무엇이 옳은 건지 무엇이 현명한 것인지 모르게 되는 것일까 등등. 그런 질문이 시작되면서 이 사회가 점점 무한경쟁으로 치닫고 있고 그 안에서 올바르게 사는 게 무엇인지 선택하고 판단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 사회의 모순을 판소리로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마침 정동극장 '아트 프런티어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게 돼 구체화됐다고 했다. 남인우 연출가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뜻이 통해 독일 연극인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을 각색하게 됐다는 것이랍니다.

모순을 비판하는 것이라 당연히 스토리는 풍자와 해학을 담고 있다. 그래서 연극적인 면을 강조한 브레히트의 작품보다 더 재미있다. 서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니 반응도 뜨겁다.

"부엌 위에 부엌 있고 부엌 아래 부엌 있는 높고 높은 탑골 팰리스…"라거나 "어디 알바라도 하고 싶지만 뚱뚱한 여자는 아르바이트도 힘들어요. 국민소득 2만 불인들 배고픈 건 여전하고요. 미분양 아파트가 넘쳐나도 내 몸 뉘일 곳은 없어요"라며 착하게 살기는 하늘의 별따기라고 사회의 모순을 아프게 꼬집는답니다.

사천가는 전통 판소리 가락에 굿 장단이나 삼바 리듬까지 곁들여 더 신명이 난다. 북소리 장단에 "얼쑤"하고 추임새까지 붙어 저절로 어깨춤이 나온다. 다양한 춤이나 음악이 어우러지고 다양한 종류의 악기들이 조화를 이루니 더 흥겹다. 그래서 어떤 이는 사천가를 '퓨전 판소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쨌든 동양적 신비가 깃든 가락에다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보다 더 재미있으니 폴란드 사람들도 반할 수밖에…. 그게 최고 여배우상까지 끌어낸 셈이랍니다.

사천가 2010에 대해 이자람은 '2007년부터 이어온 사천가의 1단계 맺음'이라는 토를 달았다. 무슨 까닭일까.

"사천가가 첫 걸음이라면, 두 번째 걸음을 걸을 때가 됐다. 다음 작품을 구상해 온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사천가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공연을 거듭하고 있는 사이, 내 속에서 생성되고 사라지는 수많은 고민들을 이제 응축시켜 다음 작품을 잘 만들고 싶다." 이자람의 설명이다.

"사천가가 진행형일지 완료형일지 고민해 본 적은 없다"는 그는 "다만 7월 서울 공연과 9월 미국 공연, 내년 3월의 프랑스 공연까지 잘 마치기를 바랄 뿐"이라고 밝혔다. 이후엔 사천가를 전수받은 소리꾼 이승희, 김소진이 그들만의 사천가를 잘 부를 것이고 자신은 다음 작품에 주력할 것이라고 했답니다.

사천가에서 보여줬듯이 그는 판소리를 전통의 굴레에 묶어두기를 거부한다. 판소리는 끊임없이 태어나고 발전하는 장르의 음악이란 것이다.

그런 신념은 창작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자람은 사천가를 만들면서 더 많은 창작을 위해 <판소리만들기 '자'>를 결성했다. 8월에 막이 오를 뮤지컬 서편제에 참여한 것도 그래서다.

"지난 1월 두산아트센터의 소개로 서편제를 기획중인 이지나 연출을 만났다. 판소리가 더 많은 일반 대중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뮤지컬 서편제를 함께 하자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사천가나 <판소리 만들기 '자'>가 만들 새 판소리 작품들을 더 많은 사람에게 소개하고 싶어 뮤지컬 서편제의 송화 역을 맡았다."라고 전했습니다.

뮤지컬 장르가 아직 생소해 열심히 배우고 있다는 그는 대본 크리에이티브팀의 일원이자 국악감독으로서 작업을 했고 최근엔 송화 역을 소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노래하는 이자람'이라 불러줘요

국악인으로서 그는 타고난 존재다.

고교 3학년 때 4시간짜리 판소리 심청가를 완창했고 대학 2학년 때는 8시간을 쉬지 않고 불러야 하는 판소리 '동초제 춘향가'를 최연소로 완창해 기네스북에 올랐다. 2007년엔 판소리 수궁가도 완창했다.

게다가 고 은희진 선생 등 여러 명창들로부터 사사했고 국악중고교를 나와 서울대 국악과에서 학사 석사를 마친 엘리트 국악인이기도 하다.

자람은 11살 때 판소리를 배우는 한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가 판소리 춘향가 이수자이자 전북도립국악원 예술감독을 지낸 은희진 선생을 만났다. 그 인연으로 은희진 선생의 첫 제자이자 수제자가 되어 국악의 정수를 배우게 됐고 학교도 국악 쪽으로 택했다.

은희진 선생이 2000년 암으로 타계한 뒤엔 판소리 거장인 오정숙, 송순섭, 성우향 명창으로부터 사사했다.

그가 "판소리를 알려주신 돌아가신 은희진 선생님, 돌아가신 오정숙 선생님, 적벽가를 알려주시는 송순섭 선생님으로부터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도 그래서다.

국악을 하던 이자람은 서울대 재학 시절 노래패 메아리에 가입했다.

"그냥 자연스레 기타소리를 따라서 문을 연 동아리방이 메아리였다. 기타를 배워보고 싶었던지라 그대로 메아리에 들어가 기타도 배우고 노래도 배우고 공연도 기획하면서 3년 동안 동아리 생활을 아주 재미있게 했다. 물론 전공인 국악성악도 변함없이 지켜냈다."

그곳에서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그는 졸업 후에도 곡을 만들고 부르고 있다. 그 인연으로 결성한 게 '아마도이자람밴드'다. 8월부터는 아마도이자람밴드의 첫 번째 정규앨범을 낼 작업에 들어간다고 했다.

밴드를 하면서 그는 '슬픈 노래', '비가 촉촉' '벙어리 여가수' 등 여러 곡을 냈다. 판소리로 입증된 가창력을 바탕으로 그는 촉촉하면서도 청량한 소리를 들려준다. 질척질척한 가을비가 아니라 만물의 생동을 재촉하는 봄비만큼이나 맑은 목소리다.

이처럼 판소리 뿐 아니라 록이나 재즈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어서인지 그는 어느 한쪽으로 불리는 것을 싫어한다.

"국악인도 가수도 한쪽으로 치우친 타이틀이라 생각한다. '노래하다'라는 동사 안에는 노래를 부르는 것과, 부르기 위해 만드는 것,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또 '노래' 라는 행위는 어떤 장르이든 사람의 목소리로 만들어 내는 것인 만큼 그 안에 모든 게 다 들어있다. 장르나 타이틀을 나누는 것, 거기서부터 문화적 편견이 시작된다."

그래서 그는 국악인이나 가수보다 '노래하는 이자람'으로 불리기를 바란다. 아주 어려서부터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했기에 이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의 음악세계를 열어준 부모는 7080세대의 우상이었다. '짝사랑'이나 '연가'를 부른 혼성 듀엣 바블껌의 이규대와 조연구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다.

아버지는 나중에 아이들과 함께 앨범을 냈는데 그 가운데 자람이 다섯 살 때 부른 노래가 빅 히트를 쳤다. "예솔아~ 할아버지께서 부르셔서 네 하고 달려가면 너 말고 네 아범…"으로 시작되는 '내 이름'이 그 노래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자람은 어려서부터 스타의 자질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두 길을 걷는 음악인

내로라하는 국악인이 됐지만 그는 그 울타리에 갖히지 않았다. 사천가나 서편제 준비에 바쁜 와중에도 밴드를 생각하고 있다.

"두 종류의 음악을 동시에 하는 게 서로 도움이 된다. 보다 풍성한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남들에게 없는 해석력이나 표현력을 얻을 수 있다." 그의 생각이다.

그렇지만 판소리는 그에게 단순한 음악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기에 그는 단 한 순간도 판소리에서 관심을 떼지는 않았다.

"21세기에 활동하는 내가 남들보다 운이 좋은 것이 있다면 바로 어렸을 때 판소리를 만나서 쭉 배워온 것이다. 판소리는 한국에만 있는 특수한 공연예술이다. 이것을 어려서부터 연마해 몸속 깊이 체득한 것이 내게는 다른 사람에게 없는 보물이다. 앞으로도 전통 판소리를 계속 배워나갈 것이고, 전통을 끊임없이 연마하고 발견하면서 현재의 이야기꾼으로서, 정말로 현재를 사는 연희자로서 작품을 만들어낼 것이다."라고 전했답니다.

그는 문화재법 때문에 판소리가 암흑기를 갖게 됐다고 보고 있습니다.

"문화재법이 생기면서 5대가(춘향가, 심청가, 적벽가, 수궁가, 흥보가)만이 살아남았고, 그 후로 아무도 새로운 판소리를 만들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다. 이제 5대가는 전통 판소리가 되었다. 전통을 잇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전통을 제대로 잇는 것은, 박제화된 것을 그대로 복사하는 행위가 아니라, 판소리가 존재하던 이유와 필요, 정말로 그 역할을 제대로 찾아내는 것이다."라고 전했답니다.

이것이 그가 판소리에 다가서는 이유이자 방법론이기도 하다. 전통 판소리를 깊이 알수록 현재 시대의 판소리를 잘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서 나온 첫 작품이 사천가입니다.

"사천가는 외도가 아니라, 현재 시대의 판소리다. 판소리가 가진 특성 그대로 계속 소리꾼들이 실험하고 창작해왔다면, 아마 1980년대와 90년대 무수한 판소리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판소리는 끊임없이 정말로 시대를 반영하고 소리꾼들에 의해 만들어지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천가는 퓨전이 아니라 판소리 그 자체라고 한다.

그가 판소리가 아닌 어떤 활동을 하더라도 많은 명창들이 그를 격려하며 지지해주는 것도 이런 그의 뜻을 잘 알기 때문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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